"관계"를 나타내는 표현 "~대하여"

 

 저번 포스팅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번 포스팅에서는 신용카드 사례에 기초가 된 판례를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아가 앞으로 진행될 포스팅들에서는 판례나 법적 문서에서 자주 사용되는 "~대하여", "~기하여", "~관하여", "~인하여"라는 단어들의 개념과 용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별 것 아니지만 판례 등의 법적 문서를 읽을 때 소소한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먼저 신용카드 판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 판 례 -


 미성년자가 신용카드발행인과 사이에 신용카드 이용계약을 체결하여 신용카드거래를 하다가 신용카드 이용계약을 취소하는 경우 미성년자는 그 행위로 인하여 받은 이익이 현존하는 한도에서 상환할 책임이 있는바, 신용카드 이용계약이 취소됨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회원과 해당 가맹점 사이에 체결된 개별적인 매매계약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신용카드 이용계약취소와 무관하게 유효하게 존속한다 할 것이고, 신용카드발행인이 가맹점들에 대하여 그 신용카드사용대금을 지급한 것은 신용카드 이용계약과는 별개로 신용카드발행인과 가맹점 사이에 체결된 가맹점 계약에 따른 것으로서 유효하므로, 신용카드발행인의 가맹점에 대한 신용카드이용대금의 지급으로써 신용카드회원은 자신의 가맹점에 대한 매매대금 지급채무를 법률상 원인 없이 면제받는 이익을 얻었으며, 이러한 이익은 금전상의 이득으로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현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법원 2005.04.15. 선고 2003다60297 판결)


 이 판례를 보시면 어떤 특징이 보이시나요? 굵은 글씨로 체크된 곳에서 볼 수 있듯이 "~대한, ~대하여"라는 표현과 "~과 ~사이에"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표현들은 모두 "관계"를 나타내는 단어들이지요. 지난 포스팅에서 제가 "관계"를 나누어서 사례를 접근해야 한다는 팁을 알려드렸는데요, 판례를 이해할 때에도 이렇게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에 주목해야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계약=선분"이라는 팁도 기억 나신다면 위 판례를 읽고 도식화를 하시는데 무리가 없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포스팅을 복습하는 의미에서 이 판례를 읽고 도식화를 함께 해보겠습니다.





 지난 포스팅(http://www.sunbykoala.net/91)에서 보신 그림과 겹쳐짐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처음 접할 때 복잡하게 느껴지는 판례를 만날 경우, "~대한, ~대하여"와 "~과 ~사이에"와 같은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에 유의하여 도식화를 하신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처음 법학을 접할 때 이런 소소한 팁을 알지 못해서 판례를 읽을 때 글자들이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혼란스러웠었는데요, 이 글을 통해서 여러분은 보다 쉽게 판례를 읽을 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법학적성시험(LEET)를 준비하시는 경우, 추리영역을 읽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기하여"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논어와 법학

  책이야기   2014.09.17 23:07

  우리나라 민사쟁송에 있어서 변호사들이 두려워 하는 판사의 말이 있다. 그것은 '화해하시지요.'라는 말이다. 비법학도가 언뜻 듣기에는 '뭐, 좋은 말이네.'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법리상 승소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和解(민사소송법 제220조)를 권고 받으면 당사자는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억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까지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건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제202조에 규정된 자유심증주의 때문이다. 즉, 법적용에 앞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데에 있어서 근거가 되는 증거채택을 법관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관이 어떤 증거를 채택하느냐에 따라서 법리적용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가 달라지므로, 변호사는 이의를 제기할지를 두고 판사의 눈치를 보게 된다. 물론 모든 법관이 화해제도를 악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이와 같은 제도적 틈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 子曰, 聽訟이 吾猶人也이나 必也使無訟乎인저 」- 논어 제12편 안연 제13장

 

  이와같은 현실을 바라보면서 공자의 必也使無訟을 전율하며 돌아보게 된다. 소송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개입하여 결정하게 되므로 어느 정도 불균형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수 천 년이 지났지만 必也使無訟은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법적·정치적 테제인 것이다. 공자가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 미봉책으로서 송사를 없도록 하자는 의미로 말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실체법을 규율함에 있어서 분쟁을 최소화 하도록 미리 입법자가 고심할 것을 강조한다. 공자는 치밀한 분석없이 흠결 있는 법률을 제정하여 법해석의 논란을  남기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를 함에 있어서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편향된 정책과 반대만을 위한 반대는 필연적으로 송사를 부르게 된다. 그렇다고 위정자로 하여금 맹목적으로 중도를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중용의 덕을 잘 실현하기 위해 고심하라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이다.

 

「子曰, 不在基位면 不謀其政이니라」- 논어 제8편 태백 제14장

 「子曰, 三年學에 不至於穀을 不易得也이니라」- 논어 제8편 태백 제12장

 

  '분쟁의 예방'이라는 개념은 제8편 태백 제14장에도 나타난다. 공자는 위정자 뿐 아니라 정사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분쟁의 예방을 위한 책무가 있음을 지적한다. 관직에 새로이 등용된 사람의 정책을 - 마치 나무에 올라간 사람을 흔드는 것처럼 - 무턱대고 비판하고, 정쟁만을 일삼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반대만을 위해서 허위사실이 유포되어 법적·정치적 문제가 발생하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제14장은 同篇 제12장과 결합하여, 학계를 분열시키고 학생들을 갈라놓는 소위 Polifessor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공자는 건전한 참여와 혼란 조장을 구별하고 後者를 경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有子曰, 信近於義이면 言可復也이며 恭近於禮이면 遠恥辱也이며

因不失其親하면 亦可宗也이니라」- 논어 제1편 학이 제13장

 

  나아가 논어는 분쟁예방에 관해서 정치적 측면을 넘어서, 좀 더 개괄적으로 제1편에서 접근하고 있다. 제13장에서는 약속은 모두 인간으로서 마땅히 의리에 맞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핍박해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민법 제1편 총칙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무효규정)와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무효규정)와 제110조(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취소규정)의 이념과 맞닿아있다. 한편 부탁함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라틴 法諺의 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져야 한다.)와 상통한다. 이것은 논어가 철학 내지 도덕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원리로서 구체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분쟁의 해결수단은 法이며 이를 연구하는 것은 法學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학은 독일과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일종의 수입품이다. 그 때문에 서양의 라틴 法諺은 아직도 유의미한 법적 원칙으로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 동야의 고전은 그와 같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본 것 처럼 동양의 고전 역시 오늘날 의미있는 테제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논어와 같은 고전을 법학적·정치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은 무척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