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글을 쓰기 전에 여러 번 주저했습니다. 과연 얼마나 되는 사람이 이 글을 볼 것이며, 또한 나는 법학에 관에서 글을 쓸 자격은 있는 것일까. 고민하던 끝에 법학을 전공하면서 제가 겪었던 시행착오를 다른 사람은 조금이나마 적게 겪기를 바라는 생각에서, 그리고 개인적인 동기부여 차원에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모쪼록 부족하더라도 선해(善解)하여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지금은 사라진 법학과(法學科)의 커리큘럼에 맞추어 보면, 법학을 시작할 때에는 민법총칙(교과서)을 먼저 읽으라고 합니다. 민법이 역사적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발전하여 다른 영역에서 개념을 빌리기도 하기 때문에 기초학문으로서 민법총칙부터 읽으라고 많이들 이야기 합니다. 제가 이번 포스팅에서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이런 민법을 접하기 전에 가장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도움이 될 "관계"라는 개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민법 사례를 풀기 위한 방법 "계약=선분"


 민법을 공부하는 최종적인 목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민사 사례를 풀기 위함인데요, 그렇다면 민사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많이 맺고 있는 관계가 그 예인데요, 바로 "계약"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계약을 맺고 살아갑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이러한 모든 행동들이 민사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민사 사례는 때로는 무척 복잡하기 때문에 도식화하면 이해하기 편할 때가 많습니다. 민법 사례를 도식화 할 때는 "계약"을 "선분"으로 개념화하면 이해하기가 편리합니다. 


- 사 례 -

1997.2.1 생인 비니코알라는 2015.11.11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카우보이 신용카드회사와 카드가입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다음 날 그 신용카드로 보부상코알라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컴퓨터 부품을 10만원에 구입하였으며, 이에 카우보이 회사는 보부상코알라에게 그 대금을 지급하였다. (카우보이 신용카드회사와 보부상코알라 사이에는 신용카드 가맹점 계약이 체결되어 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비니코알라는 신용카드가입계약을 취소하였다.


위 사례에는 두 가지 법률용어가 있는데요, 그것은 계약(契約)과 취소(取消)입니다. 


- 법률용어 -

- 계약은 법률행위의 일종이다.

- 취소란 일단 유효하게 성립한 법률행위의 효력을 무능력 또는 의사표시에 있어서의 착오, 사기, 강박을 이유로 법률행위를 한 때에 소급하여 소멸하게 하는 취소권자의 의사표시이다. 따라서 취소할 수 있는 법률행위라 할지라도 취소권자의 취소가 있을 때까지는 유효하되, 취소가 있으면 소급하여 무효로 된다. 


계약은 선분으로 도식화하면 편하다는 Tip을 모르는 상태에서 법률용어에 대한 해석만 알고 있을 경우, 초보자는 위 사례를 비니코알라의 취소로 모든 계약이 무효로 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사례에는 3가지 서로 다른 계약이 있습니다. 

A-카드가입계약, B-컴퓨터부품 매매계약, C-신용카드 가맹점 계약.

이 사례를 그림으로 간단히 표현하면 다음 그림과 같이 표현할 수 있습니다.



 


 - 조 문 -

민법 제5조 제1항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민법 제5조 제2항 : 전항의 규정에 위반한 행위는 취소할 수 있다


위 사례에서 비니코알라는 자신이 미성년자임을 이유로 민법 제5조 제2항에 의거하여 A계약을 취소한 것입니다. 따라서 A계약만이 소급하여 무효로 됩니다. 따라서 아래 그림과 같이 B계약과 C계약은 여전히 유효한 것입니다.




이처럼 민법 사레는 "관계"를 나누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즉, 위 사례에서는 카우보이 회사와 비니코알라간의 관계, 보부상코알라와 비니코알라와의 관계, 카우보이 회사와 보부상코알라와의 관계를 각각 나누어서 생각해야만 문제가 쉽게 풀린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시나요? 부족한 설명이나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포스팅에는 위 사례를 기초로 하여 비니코알라가 A계약(신용카드가입계약)을 취소했을 때 카우보이 회사에게 반환해야 하는 것이 컴퓨터부품인지 아니면 다른 것인지에 관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논어와 법학

  책이야기   2014.09.17 23:07

  우리나라 민사쟁송에 있어서 변호사들이 두려워 하는 판사의 말이 있다. 그것은 '화해하시지요.'라는 말이다. 비법학도가 언뜻 듣기에는 '뭐, 좋은 말이네.'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법리상 승소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和解(민사소송법 제220조)를 권고 받으면 당사자는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억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까지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건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제202조에 규정된 자유심증주의 때문이다. 즉, 법적용에 앞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데에 있어서 근거가 되는 증거채택을 법관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관이 어떤 증거를 채택하느냐에 따라서 법리적용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가 달라지므로, 변호사는 이의를 제기할지를 두고 판사의 눈치를 보게 된다. 물론 모든 법관이 화해제도를 악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이와 같은 제도적 틈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 子曰, 聽訟이 吾猶人也이나 必也使無訟乎인저 」- 논어 제12편 안연 제13장

 

  이와같은 현실을 바라보면서 공자의 必也使無訟을 전율하며 돌아보게 된다. 소송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개입하여 결정하게 되므로 어느 정도 불균형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수 천 년이 지났지만 必也使無訟은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법적·정치적 테제인 것이다. 공자가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 미봉책으로서 송사를 없도록 하자는 의미로 말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실체법을 규율함에 있어서 분쟁을 최소화 하도록 미리 입법자가 고심할 것을 강조한다. 공자는 치밀한 분석없이 흠결 있는 법률을 제정하여 법해석의 논란을  남기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를 함에 있어서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편향된 정책과 반대만을 위한 반대는 필연적으로 송사를 부르게 된다. 그렇다고 위정자로 하여금 맹목적으로 중도를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중용의 덕을 잘 실현하기 위해 고심하라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이다.

 

「子曰, 不在基位면 不謀其政이니라」- 논어 제8편 태백 제14장

 「子曰, 三年學에 不至於穀을 不易得也이니라」- 논어 제8편 태백 제12장

 

  '분쟁의 예방'이라는 개념은 제8편 태백 제14장에도 나타난다. 공자는 위정자 뿐 아니라 정사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분쟁의 예방을 위한 책무가 있음을 지적한다. 관직에 새로이 등용된 사람의 정책을 - 마치 나무에 올라간 사람을 흔드는 것처럼 - 무턱대고 비판하고, 정쟁만을 일삼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반대만을 위해서 허위사실이 유포되어 법적·정치적 문제가 발생하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제14장은 同篇 제12장과 결합하여, 학계를 분열시키고 학생들을 갈라놓는 소위 Polifessor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공자는 건전한 참여와 혼란 조장을 구별하고 後者를 경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有子曰, 信近於義이면 言可復也이며 恭近於禮이면 遠恥辱也이며

因不失其親하면 亦可宗也이니라」- 논어 제1편 학이 제13장

 

  나아가 논어는 분쟁예방에 관해서 정치적 측면을 넘어서, 좀 더 개괄적으로 제1편에서 접근하고 있다. 제13장에서는 약속은 모두 인간으로서 마땅히 의리에 맞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핍박해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민법 제1편 총칙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무효규정)와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무효규정)와 제110조(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취소규정)의 이념과 맞닿아있다. 한편 부탁함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라틴 法諺의 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져야 한다.)와 상통한다. 이것은 논어가 철학 내지 도덕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원리로서 구체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분쟁의 해결수단은 法이며 이를 연구하는 것은 法學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학은 독일과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일종의 수입품이다. 그 때문에 서양의 라틴 法諺은 아직도 유의미한 법적 원칙으로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 동야의 고전은 그와 같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본 것 처럼 동양의 고전 역시 오늘날 의미있는 테제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논어와 같은 고전을 법학적·정치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은 무척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