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序言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칼」

       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앞서 본 TR의 세계안보전략, 특히 평화연맹(League of Peace)을 영화화한 것이 영화 「젠틀맨리그」이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평화 유지를 위해 베니스로 모이는데, 이를 방해하는 '팬텀'을 막기 위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슈퍼 영웅을 규합한 것이 젠틀맨리그인 것이다. 이밖에도 국제경찰의 개념은 미국의 평범한 젊은이가 세계평화를 위해 싸운다는 내용의 영화「스파이더맨」과 가은 영웅물에 담겨있다. 

  그러나 필자가 본 항에서 제기하고 싶은 것은 현대판 카우보이 개념이 영웅뿐만 아니라 재난영화에도 변형되어 담겨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영화「코어」에서는 자전이 멈춘 지구를 구하기 위해 미국의 저명한 과학자가 지표를 뚫고 지구의 핵으로 접근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에 사용되기 위해 제작되었던 핵무기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용된다.'라는 대사를 주목할 있다. 이 대사는 은연중에 오늘날 미국의 무기개발을 정당화시키고 있었다. 이와같은 도식은 영화「아마겟돈」, 「딥 임팩트」에서도 같은 구조로 드러나며 미국의 우주개척을 향한 열망도 정당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미국은 꾸준하게 영화를 통해 자국의 정책을 홍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처음에 序言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런 홍보의 효과는 크다는 점을 주목하고 우리도 벤치마킹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Ⅵ. 結語

  과거 사무라이를 묘사한 니토베의 「무사도란 무엇인가 」와 카우보이로 상징되는 TR의 세계안보전략으로 한반도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일본에서는 새로운 사무라이 돌풍이 불고 있고¹, TR의 세계안보전략은 여전히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연평도 사건으로 안보가 위험한 상황에서도 예산안처리에서 여야 할 것이 없이 자기 지역구 챙기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개탄하게 된다. 과거 식민사관에서 조선은 당파로 인하여 임진왜란을 자초하게 되었다고 했던 것이 신빙성 있게 들리도록 만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역사학을 통해 TR의 세계안보전략이 오늘날에도 유효함을 인식하고, 문화산업적 측면에서는 우리만의 문화적 아이콘을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난국을 타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주(註)

 1. 2010년 11월 19일자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 열풍에 휩싸인 일본

 

 

 

 

Ⅵ. 참고문헌 및 영상       

▣ 論文

최정수, 루즈벨트의 對韓政策 樹立, 1897-1903 -露日간의 勢力均衡과 관련하여-漢城史學, 漢城史學會, 1998

          , 조지 W. 부시 독트린의 역사적 기원: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세계안보'전략 미국사연구(제23집), 한국미국사학회, 2006

          ,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와 미국의 '세계평화전략' - '국제경찰'과 약한 국가'처리문제를 중심으로- 韓國史學報(제30호)

            고려사학회, 2008

박배근, 東아시아 國際法 受用期의 朝鮮의 國際法的 地位에 관한 一考 서울국제법연구(11권1호), 서울국제법연구원, 2004

 

▣ 단행본

니토베 이나조 지음, 심우성 옮김, 무사도란 무엇인가, 東文選, 2002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 오인석 옮김, 국화와 칼, 을유문화사, 1991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남명수 옮김, 사무라이의 나라 : 집단주의와 개인성의 이상한 조합, 지식노마드, 2008

김영환, 法哲學의 根本問題, 弘文社, 2006

金大淳, 國際法論[第15版], 三英社, 2010

오와다 데쓰오 지음, 이언숙 옮김, 도쿠가와 3대, 청어람미디어, 2003

 

▣ 외국문헌

Carnes, Garraty, The American Nation - A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P. Longman Press. 2008

Constitution of United States

福川秀樹 編著,  日本海軍将官辞典, 동경 : 芙蓉書房出版, 2000 - 자료가 국내에 없어 웹(WEB)에 있는 번역문을 참조했습니다. 도위창 번역. [http://blog.naver.com/mirejet/110095428071] - 최종방문일 2010년 12월 1일

 

▣ 뉴스 및 기사

2010년 07월 15일자 SBS 8시 뉴스, 주영진 기자, 동맹이 외면한 '동해'

2010년 08월 04일자 SBS 8시 뉴스, 표인구 기자, 중국 인민 해방군 서해상서 대규모 '방공훈련'

2010년 11월 19일자 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 열풍에 휩싸인 일본

 

▣ 영화 

안소니 만 감독, 「시마론」, 1960

존 아미엘 감독, 「코어」,  2003

샘 레이미 감독, 「스파이더맨」. 2002

스티브 노링턴 감독, 「젠틀맨 리그」, 2003

마이클 베이 감독, 「아마겟돈」, 1998

                         , 「진주만」,  2001

리처드 플레이셔, 후카사쿠 긴지, 마스다 토시오 감독, 「도라!도라!도라!」, 1970

미미 레더 감독, 「딥 임팩트」,  1998    

Ⅰ. 序言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칼」

       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논란

    앞서 본 먼로독트린에 기초하여 국제경찰 개념을 구상하고 궁극적으로 평화연맹(League of Peace)를 상정했던 사람은 시어도어 루즈벨트(이하 TR이라 한다)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정책을 계승했던 정부가 미국의 조지 W.부시 정부였다. 과거 TR은 전함, 전제주의 체제, 무능국가라는 세 가지 요소가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시스템화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데에 반발하였다. 부시는 이와 같은 생각을 계승하여 원거리 공격무기, 전제적 정치체제, 약한 국가들의 3요소가 하나로 연결되어 구조적인 포위막으로 구축되고 있다고 보고 TR의 정책을 계승하고자 했던 것이다.¹

   이번 항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미국의 정부가 오바마 정부로 바뀌었음에도 한반도를 바라보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시각은 변하지 않았음을 밝히는 것이다. 특히, 그것을 천안함 사건 이후 있었던 Sea of Japan 논란과 연관지어 설명하고자 한다.

  천안함 사건 이후 7월 15일에 미국정부는 한국과 미국의 합동군사훈련 계획을 공식발표했는데 당시 서해훈련에 강하게 반발한 중국을 고려해서 동해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었다. 그런데 동해를 가리켜 크롤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Sea of Japan이라고 표현했었다. 이 발표를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발표 후 SBS 주영진 기자 역시 이에 대한 문제점을 기사로 작성하여 문제제기를 했었다.²  그러나 그 후 TR의 세계안보전략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단순한 반일 감정이 아니라, TR의 세계안보전략의 측면에서 Sea of Japan에 관해 접근해 보려고 한다.

  앞서 Ⅳ(1),(3)항에서 보았듯이 과거에는 하와이 서편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러시아와 일본이 존재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일본은 TR이 설정했던 국제법 질서 안으로 들어와 있다. 반면 러시아의 자리에는 중국이 있음을 천안함 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이후 한미연합훈련을 겨냥하여 중국이 산둥성에서 군사훈련을 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³  이처럼 중국의 한반도에대한 영향력이 높아지는 현실을 보면서, 북한이 붕괴도리 경우 중국의 자치구가 된다는 중국관련 학자의 사나리오에 주목할 필요성을 느낀다. 이 시나리오에 미국 행정부 역시 대비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생각이 바탕이 된다면, 중국과 북한이 포함된 유라시아 동쪽을 의미하는 East Sea 보다는, 세계안보전략의 품안에 들어온 일본의 서편을 의미하는 Sea of Japan으로 명명하는 것이 미국입장에서는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지도에는 그것을 그린 사람의 의도가 반영됨을 역사 속에서 우리는 보아 왔다. TR의 세계안보전략을 바라보면서 Sea of Japan 논란 역시 단순한 반일 감정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기존의 East Sea로 표기하려는 많은 분들의 노력을 몰각시키고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좀더 치밀한 분석을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TR의 세계안보전략을 고려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주(註)

1. 최정수, 조지 W부시 독트린의 역사적 기원 :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세계안보'전략 162면 참조

2. 2010년 07월 15일자 SBS 8시 뉴스, 주영진 기자, 동맹이 외면한 '동해'

3. 2010년 08월 04일자 SBS 8시 뉴스, 표인구 기자, 중국 인민해방군 서해상서 대규모 '방공훈련'

 

 

 

Ⅰ. 序言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칼」

       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¹

   국제경찰개념의 기원은 1823년 먼로독트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약한 국가가 미국의 안전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유럽 열강에 의한 중남미의 영토할양이나 체제이식을 금지한다는 것이 그 골자였다. 미국의 이러한 안보 독트린은 19세기 말까지 커다란 도전을 받지 않았다. 대서양과 나폴레옹 전쟁 후 구축된 비엔나체제(1815)가 그것의 유지를 가능케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체제를 통해 세력균혀을 이룬 유럽이 저마다 내부발전에 치중함으로써,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로 팽창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르러 미국은 약한 국가가 자국의 안전을 해칠수 있다는 논리를 아메리카 대륙에서 부활시키는 한편, 양대양 건너 해외로 확장시키기 시작했다. 중남미 대륙에서 발생한 제1차(1895~1896) 및 제2차 베네수엘라 위기(1902)와 태평양 건너에서 발발한 청일전쟁(1894~1895) 및 러일전쟁(1904~1905)이 그 계기로 작용했다. 두 차례의 베네수엘라 위기는 먼로독트린이 시험무대에 올랐음을 보여주었다. 제1차 위기에서 영국은 베네수엘라에게 국경양보를, 제2차 위기에서 독일은 차관회수를 빌미로 군함을 파견하여 사실상 베네수엘라에게 영토할양을 각각 요구했던 것이다. 이 위기는 태평양 방면에서도 일어났는데, 한국이 바로 그 당사자였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발생한 청일 및 러일전쟁이 미국의 '군사적 환경'을 변화시키는 진앙지로 작용한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다음의 다섯 가지 논리였다. 첫째, 한반도 해역에서 전함이라는 신형 무기가 선보였다. 황해에서의 청일해전을 보면서 미국은 일본이 하와이를 공격하고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다고 평가했는데, 러일해전을 목격한 후 미국 해군기지 건설 후보지를 필리핀에서 하와이로 옮기기로 결정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필리핀에 건설할 경우 방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본으로 하여금 공격하고 싶은 유혹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에게서 칼을 빼앗지 못하므로 국제법이라는 새로운 올가미를 사용하겠다는 것이었다. 둘째, 삼국간섭(1895) 후 한반도 수역에는 전세계 열강의 해군기지가 건설되었다는 점이다. 독일은 교주만을, 영국은 위해위를, 러시아는 여순을 각각 새로운 해군기지로 만들었다. 셋째, 한반도 해역에 배치된 열강의 해군은 중국과 스페인 해양제국을 해체할 수 있는 교두보로 작용할 수 있었다. 넷째, 한반도는 새로운 세력균형의 진앙지로 작용하고 있었다. 전함의 등장은 기존의 세력균형을 지구적 차원의 세력균형으로 확장케 했다. 청일전쟁과 삼국간섭은 제1차 영일동맹(1902)을 결과했고, 그것은 러불동맹과의 대결적 성격을 강화시켰다. 또한 이 전쟁은 러불동맹과 삼국동맹진영과의 일시적 제휴, 즉 대륙동맹 탄생의 가능성을 드러낸 바 있으며, 독일과 영국의 제휴 또한 실체화 일보직전까지 갔다. 그리고 영일동맹으로 무산되고 말았지만 러일동맹이 다시 시도될 가능성도 있었다. 다섯째, 그리하여 한반도는 세계적 규모의 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화약고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와같은 이유로 미국은 국제경찰제도를 구상하게 되는데, 당시 두 가지 장애가 있었다. 첫번째 장애는 유럽의 군사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세력균형체제였다. 다른 하나는 제1차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수단으로 채택한 중재재판제도 때문이었다. 이 제도는 악용될 소지가 있었다. 재판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재판의 결과를 강행할 수단 또한 결여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유럽의 군사동맹은 유럽식 국제경찰제도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었다. 미국은 세력균형체제를 전쟁체제로서, 먼로독트린에 대한 위협으로 보고 있었다. 이에 미국은 미국식 세력균형과 미국식 중재제도를 내세웠다. 유럽식 세력균형 및 중재제도에 정의의 개념을 주입함으로써, 미국식 평화안의 특징인 국제경찰이라는 개념이 탄생하였다. 이 국제경찰은 상위 기구인 세계법정과 세계헌법을 염두에 둔 것이었으며 궁극적으로 평화 연맹(League of Peace)을 상정한 개념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은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당장은 문명국 간에 중재조약망만 구축하고, 후진국(약한 국가)과 문명국 간의 중재조약은 유보하고, 대신 약소국들을 관리할 수 있는 국제경찰제도를 만든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임했다.

  그런데 왜 미국이 중남미 국가 전부를 헤이그로 데려가면서도 한국은 제외시키도록 러시아에 종용한 이유는 무엇인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먼저 중남미의 경우 드라고 독트린을 헤이그 중재재판소의 규약으로 채택시킬 경우, 유럽열강이 중남미에 제공한 채무 회수에 착수할 때, 중재재판단의 일원인 미국이 개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드라고 독트린은 아르헨티나의 드라고 외상이 제2차 베네수엘라 위기 후에 발동한 중남미판 먼로독트린을 말한다. 그것은 '채권국은 채무국에 부채회수의 수단으로 무력 사용을 금지한다.'는 것을 골자로 했다.

  그렇다면 왜 한국은 제외되었는가? 그 이유는 문명국 간의 동맹망이 구축되어있는 상황에서 문명국과 약한 국가 간의 중재조약은 유럽열강의 세력 균형망을 약한 국가들로 확대하는 결과, 즉 세력균형의 지구화를 초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약한 국가인 한국이 기존의 동맹망에 포섭될 경우, 전쟁의 가능성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에 참여할 수 없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비록 한국이 헤이그에 초청받지는 못했지만, 초청받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한국이 미국식 패러다임의 신세계 질서에 이미 포섭되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때 보여준 미국의 평화구상의 기본원리가 현재까지 일관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4)항에서 논하도록 한다.


 



 

 주(註)

1.최정수, 제2차 헤이그 평화회의와 미국의 '세계평화전략'을 참조 정리하였다.




 


Ⅰ. 序言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칼」

       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하와이) 그리고 한국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미국의 동부는 무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 때문에 영국에 의존하는 경향ㅇ르 전통적으로 지녀왔다. 따라서 카우보이로 상징되는 서부개척은 탈영국사대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신ㆍ구간의 갈등을 의미하기도 했다. 신ㆍ구간의 갈등의 예는 서부영화 「시마론」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주인공 :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없다고요. 쓸만한 땅은 모조리 차지하고 있어요. 해 지기 전까지 에이커도 안 남을 거애요. 생각 좀 해봐요. 200에이커 중에 1에이커도 안남는다고.

 

장모 : 내가 원하는 땅은 바로 여기야. 여기에서 신문사 경영하고 변호사 업무보면서 오클라호마 얘기 좀 그만하면 안되겠니?

 

주인공 : 돌아가서 이 나라의 마지막 개척자들이 새 주(州)를 건설하는 것을 돕겠어요.

 

- 안소니 만 감독, 「시마론」 중에서-

 

 

그러나 이와 같은 갈등을 넘어서 카우보이의 열망은 보다 서쪽을 향하게 된다. 이른바 오션 프런티어(Ocean Frontier)가 그것이다.  이 무렵 일본은 청ㆍ일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이를 본 미국은 태평양 섬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선제 점령에 나서는 한편, 러시아를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미국은 러시아의 중국영토잠식행위, 특히 남만주 침공을 태평양진출을 위한 교두보구축(橋頭堡構築)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¹ 따라서 유라시아 대륙의 해양출구를 봉쇄하여 러시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일본과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맺어 한반도를 일본에 넘기게 된다. 왜 조약이 아닌 밀약을 맺을 수 밖에 없었는지는 다음 (2)항에서 다루기로 한다.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국제법적으로 '우호통상조약'은 '양국 간의 관계를 포괄적으로 그리고 불확정한 기간 동안' 규율하기 위한 양자조약(兩者條約)으로 묵시적 승인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된다.²   다시 말해 국제법상 국가의 국제인격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창설적 효과설)³  그렇기 때문에 조미수호통상조약은 한국의 국제인격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⁴

  한편 조미수호통상조약은 미국 상원에서 인준을 받은 것으로 볼 때, 연방헌법 제2조 제2항 2단에 의거햐여 출석한 상원 2/3이 찬성할 것을 조건으로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얻은 국제협정, 다시 말해 연방헌법 제6조 제2항의 Treaty에 해당한다고 생각된다.

 

This Constitution, and the laws of the United States which shall be made in pursuance thereof; and all treaties made, or which shall be made, under the authority of the United States, shall be the supreme law of the land; and the judges in every State shallbe bound thereby, any thing in the Constitution or laws of any State to the contrary notwithstanding.

 

- Constitution of United States, Article. Ⅵ - 

 

 

따라서 이에 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위헌적인 행위로서 대통령 탄핵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러ㆍ일 전쟁 말엽에 가쓰라-태프트 '밀약(密約)'을 맺게 된 것이다.

 

 

 

 

 

 

 주(註)

1. 최정수, 루즈벨트의 對韓政策 樹立, 1897-1903  - 露日간의 세력균형과 관련하여 - 98면 참조

2. 金大淳, 國際法論[第15版] 364면 참조

3. 金大淳, 前揭書 : 19세기에 대대적인 지지를 받은 Kelsen의 창설적 효과설(constitutive theory)이다. 그 후 선언적 효과설이 대두되어, 양자를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관해서는 356-363면 참조

4. 물론 미국과 청나라 사이에 이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에 관해서는 박배근, 東아시아 國際法 受用期의 朝鮮의 國際法的 地位에 관한 一考 19-24면 참조

 

Ⅰ. 序言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칼」

       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Ⅲ. 미국인의 전쟁관

   (3) 영화「진주만」과 다큐멘터리「신화」와 도서「국화와 칼」비교

    영화「진주만」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하 FDR이라 한다.)의 대사를 비장하고 중요하게 묘사하여 주제를 부각시킨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 (진주만 피격 후) 애리조나 호에 사람들이 아직도 갇혀있다는 것이 사실이오? 불굴의 국가라고 자부해 왔건만 우리가 얕잡아 봤던 적군에 의해 아군의 전함이 격침됐소. 미국은 위기에 직면했소. 그래서 보복을 하자는거요. 그들과 똑같이 대응하자는 뜻이오. (각료가 반대하자,) 위험에 맞서지 않고도 승리를 기대합니까? 전쟁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오. 여러분 대부분은 내가 걸어다녔던 걸 기억 못할 겁니다. 나한테도 힘과 긍지가 있었소. 난 매순간 주님께서 나를 앉아 있게 만든 이유가 의문이었소. 그러나 나와 여러분은 목전에서 패배를 목격했소. 나를 이렇게 앉힌 이유는 지금 같은 위기일수록 우리가 누구였고 굴복해선 안 됨을 일깨우기 위함이라 믿습니다. (또다시 각료가 반대하자, 스스로 일어선다.) 나한테 앞으로 다시는 안 된다는 말, 하지 마시오.

 

- 마이클 베이 감독, 「진주만」중에서 -

 

 

 

  베이 감독은 FDR을 통해 미국인의 정의관, 전쟁관, 그리고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도 보여주고 있다. FDR은 그들의 정의의 원칙인 '같은 것은 같게'에 따라 보복을 주장한다. 그러나 어떤 것을 같게 취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순수한 합리적인 인식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는 일종의 결정의 힘이라는 비합리적인 요소가 개입된다.¹  베이 감독은 이 '결정의 힘'의 정당성을 FDR를 통해 주장한다. FDR의 주장에 힘을 싣는 근거는 '(일본의 비겁한 공격으로) 애리조나 호에 아직도 사람들이 갇혀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FDR의 공격명령은 정당성을 얻게 되며, 이와 같은 정의관과 전쟁관은 루스의 「국화와 칼」에도 나타난다. 루스는 태평양 전쟁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의해 강요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인은 생활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하며,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고 분석한다. 

 

 

  미국인은 무엇보다도 이 전쟁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의해 강요되었다는 '이유'로써 전쟁에 몸을 던졌다. 우리들은 공격당했다. 따라서 적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 한다. 미국인들에게 안심을 줄 수 있도록 획책하는 대변인은, 진주만이나 바타안 반도에서의 패배를, "이것은 우리들 계획 속에 충분히 고려된 것이었다."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우리 관변측(官邊側)은, "적은 저쪽에서 멋대로 들어와 싸움을 걸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고 말했다. 미국인은 생활 전부를 끊임없이 도전해 오는 세계에 맞게 조정한다. 그리고는 그 도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반면 일본인은 오히려 미리 계획되고 진로가 정해진 생활양식에서만 안정을 얻으며 예견하지 못한 일에는 심각한 위협을 느낀다.

 

-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31면 참조 -

 

 

 

  다큐멘터리「신화」역시 루스와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신화」는 모두(冒頭)에서 9ㆍ11테러로 인하여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을 시작해야하는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제작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다큐「신화」는 정의를 위해 몸바쳤던 군인들을 추모하면서 영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쟁관과 기원에 대해서는 다음의 Ⅳ항에서 다루기로 한다.

 

 

 

 

 

 

 주(註)

1. 김영환, 法哲學의 根本問題 64면 참조

Ⅰ. 序言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칼」

       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앞서 본 바와 같이 영화「도라」는 일본군을 진취적이고 활기차게 그리고 있다. 그 기저에는 앞서 인용한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의 생각과 상통하는 면이 있다. 즉,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정신적 승리'를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비록 적이지만 정신적 측면에서는 본받을 것이 있다는 문제제기와 자기반성이 이 영화에 숨어있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카우보이'라는 문화적 아이콘이 등장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카우보이 영화는 이미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카우보이와 같은 문화적 아이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등장하게 된 계기를 보여주는 일종의 텍스트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¹ 한편 영화「진주만」은 영화「도라」에서 제기된 문제제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카우보이는 이미 태평양전쟁시대에 존재했었다고 주장한다. 주인공 레이프와 데니 그리고 두리틀 대령과 부대원이 영화로 인해 신화화된 카우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영화「도라」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앞서 Ⅱ(1)항에서 본바와 같이 영화「도라」에는 일본의 공격을 미리 알았다면 미국 해군이 무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있다. 또한 영화「도라」에 나타난 미국 해군장성들은 해군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관념은 이미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쓰시마 해전(1905년 5월 27일과 28일)을 분석하면서 '전쟁의 패러다임이 해군중심으로 바뀌었다'² 라고 이야기 한 것이었다. 각주2의 논문에서 지적하는 것처럼 근본적인 개념은 변하지 않았지만, 방법적인 측면에서 전쟁의 패러다임은 한 번 더 바뀌고 있었다.  이 점을 지적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신화」이다. 다큐「신화」에서는 설령 미국이 진주만 공격을 1시간 전에 인지했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제로전투기의 기술적 우위로 인해서 역사는 크게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주(註)


1. 미국인이 얼마나 사무라이 이미지에에 영향을 받았는지는 카우보이 영화「황야의 무법자」도 잘 알려준다. 이 영화는 일본의 사무라이 영화인「요짐보」를 그대로 리메이크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2. 최정수, 조지 W. 부시 독트린의 역사적 기원 :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안보전략 158면 참조



 

Ⅰ. 序言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칼」

       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 방법

   (5) 소결 (小結)

    미국인의 일본인에 대한 인식을 비교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로인해 우리의 역사적 운명이 결정되었음을 깨닫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항을 논한 이유는 오늘날 사무라이 이미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케가미 에이코의 「사무라이의 나라」를 보면 사무라이가 만들어진 이미지임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¹  중요한 것은 사무라이가 잘 만들어진 이미지임을 알고 우리의 과거가 영향을 받았음을 깨닫는 것이지, 그 이미지에 동화되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주(註)

1. 이케가미 에이코 지음, 남명수 옮김,  「사무라이의 나라 183면 참조: 스스로에게 죽음을 부과하는 관행을 이렇게 분석해 왔지만 패배한 무사들이 전장에서 항상 자결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해두자. 주군의 집안과 일체화되어 개인적인 강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던 사무라이의 경우로만 분석을 한정해보아도, 그들도 자기보존 본능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죽음을 선택할 리 없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죽음이라는 개념의 제도화가 가지는 상징적인 중요성이다. 중세 후기 들어 어느 특정한 경우에는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죽음이 규범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이라는 문화적 찬미가 시작되었다. 이 의식적 자결은 고도화된 의식과 결합된 도덕적 미학으로 장식되었다. 그 결과 모든 사무라이가 실제로 따를리 없는 도덕규정이 문화적으로 신화화 되었다.

 

 

Ⅰ. 序言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칼」

       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란 무언인가」라는 짧은 단행본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하나 하나 근거를 들어 비판하기는 지면상 어렵기 때문에 몇 가지 치명적인 논리적 결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이 책은 사무라이에 관한 기록의 출처를 세세히 밝히고 있지는 않다. 그 결과 니토베가 원하지 않는 사실(예컨대 명예를 빙자해 살상을 자행했던 사실)은 떠도는 풍문으로 치부되지만, 그가 원하는 사실(예컨대 공격이 실패한 불명예스러운 상황에서 할복자살하는 것)은 확고한 역사적 사실로서 묘사하고 있었다. 특히 공격이 실패한 경우 할복자살하는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조차 지키지 못한 예가 있다.¹  게다가 「무사도란 무엇인가」에 인용된 주(註)는 대부분 서양의 서적을 비유적으로 차용한 것이었다. 「무사도란 무엇인가 」는 역사적 고증이 부족한 전략적 홍보서에 불과했지만, 미국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미국인인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는 직ㆍ간접적 영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전쟁 중의 일본인'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었다.

 

  군함이나 대포는 바로 불멸의 일본 정신에 대한 외면적 표시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무라이의 칼이 마치 용기의 상징이었듯이 그것들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미국이 계속해서 물량(物量)의 증대에 전력을 기울인 것 같이, 일본은 비물질적 수단을 이용하는 데에 시종일관했다. (중략) 그들(일본) 말에 의하면, 정신은 전부이며 영구불멸한 것이다. (중략) 그들(일본)의 군대용 문답서는 "그들(미국)의 수효에는 훈련으로 맞서며, 강철에는 육탄(肉彈)으로 대항한다."는 표어를 사용했다. 이 표어는 이번 전쟁을 위해 특별히 지어낸 거싱 아니고 전통적인 것이다. 그들(일본)의 군인 수첩은 큰 활자로 인쇄된 '必讀 必勝'이라는 문구로 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의 소형비행기로 아군 군함속으로 뛰어들어 자폭하는 조종사들은 물질에 대한 정신적 승리의 교훈이 되었다.²

 

 -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 오인석 옮김 「국화와 칼」 27면 참조 -

 

 

 

밑줄부분이 잘못된 인식임은 영화「도라」에 등장했던 쿠로시마 카메토(간디)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다.³ 육탄(肉彈) 공격의 개념은 1943년 4월에 야마모토 사령관이 피격되자(해군 갑사건) 쿠로시마가 분노하여, 인간을 무기로 한다는 특공이란 수단을 최초로 정립하면서 비로소 등장한 개념이다. 게다가 쿠로시마는 종전후 다른 군인들처럼 본토결전을 주장했으나, 전후(戰後) 전쟁범죄에도 관련되지 않았고 자결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이 허상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더구나 「국화와 칼」을 저술한 루스 베네딕트는 단 한 번도 일본에 간 적이 없었다는 점도 저서의 신뢰성에 의심이 가게 한다. 루스는 「국화와 칼」을 저술하기 위해 미국 내 많은 일본 이민자들을 인터뷰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내 일본인에 대한 수용소정책(Interment of Japanese)⁴에 따른 일본이민자들의 감정을 고려할 때, 인터뷰 내용이 다소 과장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註)

 

 1. 오와다 데쓰오 지음, 이언숙 옮김, 「도쿠가와 3대」53면 참조 1572년(겐키 3년)에 미타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하여 간신히 도망쳤다고 한다.

 2. 밑줄은 루스가 아닌 필자가 첨가했다.

 3. 福川秀樹 編著,  日本海軍将官辞典(ISBN:482950272X) - 자료가 국내에 없어 웹(WEB)에 있는 번역문을 참조했습니다. 도위창 번역. [http://blog.naver.com/mirejet/110095428071] - 최종방문일 2010년 12월 1일

 4. Carnes, Carraty, (2008) The American Nations p726

Ⅰ. 序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칼」

       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2) 영화 「도라」와 다큐멘터리 「진주만의 신화」비교

    영화「도라」는 진주만 공격을 성공으로 보지만 다큐멘터리 「진주만의 신화」(이하에서는 「신화」로 약칭한다.)는 실패로 판단하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이것은 일본인에 대한 관점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도라」는 일본의 치밀한 계획 하에 진주만 공격이 성공하였으며, 다만 항공모함을 격추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신화」는 3차 공격을 감했다면 연료기지와 수리시설을 파괴하여 무력화시킬 수 있었는데 이를 놓친 판단착오가 있음을 지적한다. 「신화」는 일본인에 관해서 치밀하고 강력한 사무라이(전사)라는 기존의 이미지에 반대되는 입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도라」와 차이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도라」에서 일본군은 활기에 차있는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신화」에서는 고온으로 근무하기 열악한 일본 잠수정의 당시 실태를 지적하고 있었다.

 

  (3) 영화「진주만」과 「신화」비교

   영화「진주만」에서는 일본군이 출격하기 전에 자신의 목숨을 국가를 위해 기꺼이 바치겠다고 조국의 영령에게 기도하는 장면을 묘사하여, 기존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참전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일본군 포로가 살아서 본국에 돌아가기를 두려워했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지배적 통념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지배권력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다시말해 명예롭게 죽여달라고 강력히 말하는 사무라이가 아니라, 전쟁에 참여한 보편적인 젊은이였다고 표현하는 점에서 종래의 인식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은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란 무엇인가」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것의 허위성에 대해서는 다음 (4)항에서 밝히기로 한다. 

 Ⅰ. 序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

   칼」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도라도라도라와 영화진주만비교

 

영화 제작자가 어떠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고 부각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미국인 감독인 리처드 플래셔에 의해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도라도라도라(이하에서는 도라로 약칭한다.)는 피해자로서의 감정을 절제하고 사건에 접근하고 있었다. 도라는 적지않은 부분에서 사학계의 통설에 따라 진주만 사건을 미국인들의 태만하고 방만한 군 경영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정보참모의 계속되는 정보 분석을 무시하고 사교에 신경 쓰는 군 수뇌부 묘사, 전화기 하나 배치되어 있지 않은 레이더 기지 묘사, 그리고 잠수정을 격침시켰다는 워드 호의 보고를 무시하는 묘사에서 이런 점이 나타나고 있었다. 한편 일본인에 대해서는 치밀하고 강력한 전사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치밀함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이 이른바 '간디'라는 일본군 참모이다. '간디'는 작전에 대한 검토를 위해서 총사령관과의 식사에도 참석하지 않고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게다가 그를 힐난하기 보다는 '그 사람은 한번 몰두하면 도무지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인물이잖아'하고 웃으며 말하는 동료들의 모습도 묘사함으로써 치밀하고 협동심 강한 집단이라는 생각을 전달하고 있었다. 또한 일본군 간부는 더 공격하자는 젊은 장교들에게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우리 항모이 위치가 노출되어서는 안된다.'하고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인을 치밀한 전사로 묘사하면서도 야만적인 느낌을 배제하면서 묘사한 것이 주목해야 할 것이었다. 예컨대 평화협정을 유도하려고 노력했던 일본 대사를 묘사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일본군의 야마모토 해군 사령관이 "많은 일본인들이 미국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개인주의가 판치고 물질만능에 젖은 부패한 국가라고. 그러나 그건 큰 착오다. 전쟁이 터지면 미국은 그 어느 국가보다 강한 적이된다. 난 미국에서 살았고 교육을 받았다. 미국인들은 강한 긍지와 정의감을 지녔다.", "(진주만 공격 성공 후) 잠자는 거인을 깨워 끔찍한 결과를 낳는 것이 나는 두렵다"라고 한 것을, 감독이 자세히 묘사한 것에서, 일본내에도 온건한 세력이 있었고, 맹목적 전쟁을 방지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일본과의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두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와 같이 그려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영화진주만은 영화도라와는 현저히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진주만에서는 미국인의 과실을 상징하는 묘사가 도라에 비해 극히 적은 시간동안만 배치되었고 크게 부각되지도 않았따. 쿠로시마(간디)에 대한 묘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도라에서 일본군이 대등한 주연이라면 진주만에서 일본군은 미국의 피해를 묘사하기 위해 필요한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도라와는 달리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부상당한 병사들이 고통스러워 아우성치고 있는 의무대를 비중 있게 묘사함으로써 피해자로서의 미국이 부각되고 있다. 또한 영화 도라에서는 야마모토 사령관이 선전포고에 관한 국제 협약을 준수하기를 원하고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진주만에서는 일본군 간부가 기습과 교란을 지시하고 하급장교 역시 이에 동의하는 장면만이 나온다. 이와 같은 차이에서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일본군의 기습공격이 비열한 공격이었음을 표현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의도는 영화 속에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하 FDR이라 한다.)의 대사로 잘 나타나며 미국인의 전쟁관과 연결되므로 후술하기로 한다.

 

 

 Ⅰ. 序言

 Ⅱ.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

   (1) 영화 「도라도라도라」와 영화 「진주만」비교

   (2) 영화 「도라」와 다큐 「진주만의 신화」비교

   (3) 영화 「진주만」과 「신화」비교

   (4) 종래의 사무라이에 대한 인식의 허구성

   (5) 소결(小結)

 Ⅲ. 미국인의 전쟁관

   (1) 영화「도라 와 영화「진주만」비교

       - 카우보이의 필요성 제기와 탄생

   (2) 영화 「도라 와 다큐멘터리「신화」비교

       - 해군중심주의에서 공군중심주의로

   (3) 영화「진주만」과 다큐「신화」와 도서 「국화와

   칼」비교

 Ⅳ. 국제경찰개념과 진주만 그리고 한반도의 운명

    (1) 하와이 서편을 향한 카우보이의 열망 - 제2의

    서부개척

    (2) 미국헌법과 국제법적 측면에서 본

         조미수호통상조약과 가쓰라-테프트 밀약

    (3) 헤이그 평화회의 - 국제경찰개념의 실현

    (4)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 사건과

         Sea of Japan 논란

 Ⅴ. 논의의 확장 ; 영화 속 현대판 카우보이

 Ⅵ. 결어(結語)

 Ⅶ. 참고문헌 및 영상

 

 

 

 

 

Ⅰ. 序言

  역사서에 사학자의 사관이 반영되는 것처럼, 영화는 제작자의 의도가 반영된다. 영화의 문화적 파급력은 실로 대단하여, 보는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제작자의 생각을 주입받게 된다.¹ 물론 제작자의 의도가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것만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상품이기 때문에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조건도 갖고 있다. 따라서 영화에는 그 시대 삶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담겨 있다. 이하에서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1941년 12월 7일)'을 소재로 다룬 세 가지 영상을 비교하면서 ① 미국인의 일본인 인식방법을 일본관련 단행본과 관련지어 분석하고, ② 미국인의 전쟁관을 분석하고, ③ 미국의 전쟁관과 관련이 깊은 국제경찰개념에 관해 歷史論文과 法學論文을 참조하여 당시 상황을 심층적으로 파악해보고, ④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경찰개념과 천안함사건과 Sea of Japan 논란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아울러 마지막에서는 오늘날 되풀이 되고 있는 현대판 카우보이 영화에 대해 다루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주(註)

 

1. 다큐멘터리20세기 희망과 역사에서는 영화가 대중의 심리를 좌우하고, 나아가 세계대전을 계기로 역시를 좌우하는 힘

   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특히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영화를 전략적으로 이용했던 모습은, 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재에도 사용되고 있다. '. 논의의 확장'에서도 다루겠지만, 미국의 국제경찰 개념과 카우보이 영화가 결합한 대표적

  예가 영화 젠틀맨리그, 다크나이트,스파이더맨등의 영웅물이다. 이들은 현대판 카우보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