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미술관을 있는 사람들만 가는 곳 혹은 감상을 파는 사치의 공간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하는 작가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미술관에서는 감상자를 일깨우고 호소하기 위해서, 시대를 대변하거나 시대에 맞서기 위해서 애썼던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 미술품의 배치 역시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배열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의도와 노력들을 고려하지 않고 감상을 해서는 안 된다. 좋은 책을 읽을 때 천천히 분석하고 추론하면서 읽는 것처럼, 미술을 감상할 때에도 하나 하나 음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비로소 미술관에 가는 참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컬렉션, 미술관을 말하다」를 관람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했다. 넓은 전시실을 거닐면서 지치기도 했었지만, 전시실에서 근대의 격동기를 치열하게 살았던 작가들과 마주할 수 있어 설레고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마침내 전시실을 나오면서는 아쉬움과 뿌듯함을 함께 맛볼 수 있었다.

"어떻게 예술가가 다른 사람들의 일에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

회화는 아파트나 치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회화는 적과 싸우며 공겨과 수비를 행하는

하나의 전투무기입니다." - 피카소

 

 

 

  피카소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예술의 파급력, 대중에 대한 호소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힘이다. 전시관 「잊혀진 전쟁, 현실의 분단」에서는 6ㆍ25에 관한 작가들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피카소의 작풍(作風)과 유사해서였을까. 변영원님의 「반공여혼」은 어느 작품보다 호소력있게 마음에 와 닿았다. 입체주의적 표현법으로 주된 인물의 입을 발로 묘사하고, 입에 대포를 문 것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마치 반역분자를 색출하라고 외치는 것 처럼 느껴졌다. 초점이 없는 눈만 달린 머리를 하고 총포를 들고 달려나가는 군상을 통해, 생각 없이 맹목적인 살상을 자행하는 자들을 고발하고 있었다. 그림 하나로 정말 많은 뜻을 구체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작가의 의지와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철이님의 「학살」은 합판에 유채를 부드럽게 채색하여 안개 싸여 음산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었다. 달이 떠있어 그 빛 때문에 피와 옷 색깔이 보이고 있었다. 중앙에 위치한 달은 일종의 고발자이며 시대적 눈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판사가 판결문을 작성할 때에도, 소설가가 소설을 쓸 때에도 필요하지 않은 문구나 소재는 전혀 쓰지 않는 것처럼, 작가가 달을 중앙에 위치시킨 것은 그만큼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옥상님의 「6ㆍ25 전의 김씨 일가」와 「6ㆍ25 후의 김씨 일가」는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빈 칸으로 처리하여 상실의 아픔을 전하고 있었다. 환갑잔치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의 배치에서 단란했던 대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아픔이 가슴저리게 와 닿고 있었다. 작가는 왜 아무 이유없이 곁에 있던 사람들이 사라져 가야 했는가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김정헌님의 「잡초와 6ㆍ25의 기억」은 붕괴된 한강다리를 건너는 피난민들을 흑백으로 묘사하고 잡초는 녹색으로 선명하게 묘사하여 색채가 대비되도록 표현하고 있었따. 짓밟혀도 살아나는 민초들의 모습을 잡초로써 상징적으로 강조하여 그려내고 있었다. 8개의 캔버스 조각이 합쳐 구성된 것이 특이했다.

 

  어릴적 신문에서 유일하게 재밌는 부분은 4컷 만화였다.어려운 한자와 시사적 개념들 속에서 헤매는 어린 아이에게 만화는 유일하게 보고 즐길 수 있는 부이었다. 4컷만화의 글귀를 화이트로 지우고 다른 글귀를 채워 전혀 다른 이야기로  만드는 것은, 때로는 우스워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중에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꼬맹이 시절 장난 놀던 그 4컷 만화가 「고바우영감」이란 걸 깨달았고, 그 위트와 촌철살인의 풍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6ㆍ25 당시 고등학생이었떤 김화백은 객관적인 눈으로 당시의 참혹해썬 상황을 여러 점의 수채화로 그려내고 있었다.

 

 

「피난 가는 돈암교 근처」는 흑백사진으로만 접하였던 당시 피난민의 모습을 색채감 있게 묘사하여 직접 경험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우마차를 타고 입성하는 인민군」은, 전쟁에 우마차까지 등장한 줄은 전혀 몰랐던 터라, 그 기록으로서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사람 중에 신속을 요하는 전쟁에서 우마차가 쓰였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밖에도 말로만 전해 듣던 '쌕쌕이 비행기'도 작품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많은 작품들 가운데, 아, 이건 단순한 기록화(記畵)가 아니라 걸작이다, 라는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었다. 「1950년 12월 10일 중공군 개입으로 불안해하는 시민」이 그것이다. 어두운 배경으로 전차불만 켜져 있는 도로에 회색 그림자를 드리우고 불안하게 돌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었다. 자동차 라이트 빛 사이로 비친 얼굴과 도깨비불처럼 점점이 묘사된 전차불이, 비록 색채와 구도는 다르지만, 뭉크의 「불안(Die Angst)」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아마도 인간의 근원적 불안은 서로 통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까막눈, 한국회화에 눈뜨다.

 

  자화상, 하면 기껏해야 렘브란트와 고흐 정도밖에 떠올릴 수 없는 사람. 그들의 작품을 보고, 음, 참 많이 그렸군, 정도의 감상밖에 말하지 못하는 인간. 그게 바로 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실 도입부에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된 일련의 「자화상」들을 보고 느낀 놀라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물체(사람)은 여러 대응이미지를 갖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김영환님의 「자화상」은 그 구성면에서 기존의 작품과 차이가 있었다. 1점 투시도법으로 표현된 황량한 길 위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파스텔처럼 부드럽고 뿌옇게 표현하여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다. 이 작품이 합판에 유채로 그렸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웠다. 작가의 외모보다는 작가의 내면을 표현하려는 의도인 듯하였다. 뿌옇게 처리한 것은 아마도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서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실제로 인식하는 것 사이에는 심연(深淵)이 가로 놓여 있음을 표현하려는 것 같았다.

 

  하인두님의 「자화상」은 얼굴을 파묻고 쪼그려 앉아있는 모습을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조가 조각내어 표현하고 있었다. 작품 속에 표현된 인물의 자세나 전반적인 색채가 어두운 것에서 음울함이 느껴졌다.

 

  김 을님의 「나」는 합판에 동판을 붙이고 유채를 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자화상은 붓으로만 그린다는 선입견을 깨뜨릴 수 있었다. 재료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로부터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면적 심상을 유추할 수 있었다. 동판의 차갑고 날카로움에서 능히 인물의 심리상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재료 역시 표현에 있어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되었다.

 

  차대혁님의 「자화상」은 처음엔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인 줄로 착각했었다. 작품 속 인물의 얼굴에 붙은 파리 묘사가 너무도 사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서 얼굴 윤곽을 회색 톤으로 희미하고 부드럽게 표현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와 대비되게 파리는 극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사실적인 묘사로 인해 하인두님의 작품과 달리 음울한 주제가 훨씬 와 닿았다.

 

  자화상 섹션 마지막에는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만들어진 앤디 워홀의 「자화상」도 전시되고 있었다. 상반기에 열렸던 앤디 워홀 작품전시회에 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었었는데 무척 반가웠다. 그의 삶을 되짚어보면서 상업적 마인드와 표현기법에 있어서의 천재적 발상에 부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는 공허함이 묻어났다. 실크스크린 기법을 통한 기존 이미지 반복과정에서 모델의 일그러짐. 대량생산으로 대표되는 미국적 가치. 모두가 그가 의도한 바였겠지만, 그 현실 속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왠지 씁쓸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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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회화의 두 거장, 이중섭과 박수근

 

  전시회를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감상은 체력이 있어야 한다. 전시회 감상은 작품에 대해서 하나 하나 생각하고 해석하고 추론하는 탐험이기 때문이다. 넓은 갤러리를 거닐면서 점점 지쳐갈 때쯤 오아시스처럼 나타난 건 이중섭님의 「투계」. 신기루가 아닌가, 하고 두 눈을 비벼댔다. 힘 있는 직선과 단순화를 통해 역동적으로 표현된 닭들의 모습이 이중섭님의 작ㄷ품임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이 작품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김용주님의 「투계」가, 오른쪽에는 「부부」가 걸려 있어 비교하면서 가상하기에 적합했다.

 

 

이중섭 「부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김용주님의 「투계」는 이중섭님의 작품보다는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졌다. 눈동자를 강조하여 투계의 독기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었다. 특히, 목주위의 깃털을 위로 향하게ㅐ 묘사한 것은 투계 특유의 상징을 잘 묘사하면서 강인함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었다. 바탕은 푸른색과 황토빛으로 처리되어 붉은 닭의 모습과 함께 삼원색의 배열을 보여주어,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중섭님의 「부부」는 선 표현에서 이중섭님의 「투계」와 같은 작풍(作風)을 보여주었지만 구도와 색채 면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강조하고 있었다. 「투계」와 달리 배경을, 저녁노을이 비친 바다처럼, 가로선으로 연분홍과 짙은 파란색을 번갈아 표현하고 있었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맞댄 모습에서는 부부를 연상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투계」와 무척 다른 분위기 때문에 전체적 구도에서 우리네 문관복(文官服)의 흉장(胸章)과 유사한 구도를 보이고 있고, 두 마리의 새가 위 아래로 마주보며 배치되어 '조화'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불현듯 오래전에 읽었던 김춘수님의 詩 <내가 만난 이중섭>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동경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이윽고 다시 작품을 바라보니 부리를 맞대지 못해서 눈을 부릅뜬 새의 모습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바다 건너의 아내를 만나지 못해 늘 수심에 차있던 작가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인생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서 감상이 크게 바뀔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릴 종이가 없어 담배 껍질인 은지(銀紙)에 그렸다는 이중섭님의 「물고기와 아이들」은 작가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였다. 말로만 전해 듣던 유명한 작품을 직접 볼 수 있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이중섭님의 작품들 옆으로는 박수근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바수근님의 「노상」은 우둘투둘한 화폭의 질감으로 벽화를 보는 듯한 특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하얀 한복과 노상의 모습에서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질박한 풍경 묘사가 우리의 조선백자를 보는 듯한 담백한 맛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거장이군, 하고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박수근님의 「할아버지와 손자」는 쭈그려 앉은 할아버지와 그 품안에 안겨서 앉아있는 손자의 모습이 크고 두드러지게 묘사하고 있었다. 배경의 일하는 아낙들의 자세 묘사나 주된 인물을 크게 표현하는 방법에서 흡사 무용총을 보는 듯한 구도와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화백의 성정(性情)만큼 구수하고 순박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미술관에 가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미술관에 가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조용하고 모던한 느낌이 마음을 차분하면서도 산뜻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미술에 관한 지식은 적지만 인사동 화랑이나 도서관의 소박한 전시회에는 종종 가곤 한다. 무료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지난 학기에는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모네에서 피카소까지」에 갔었다. 성균관대학교 법학과에 다니는 손군이 동행해 주었는데, 서로 평소 읽어두었던 작가의 일화(이를테면 고흐와 고갱의 일화나 모네의 녹내장 병력과 작품과의 관계 같은 것)나 작품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어 무척 즐겁게 감상했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는 아쉽게도 시간이 맞지 않아 동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혼자서 전시회에 가는 것도 작품에 집중할 수 있어 즐거웠다. 작품 속에 남아있는 작가의 숨결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좀 더 차분하게. 명상하듯이. 가브리엘 포레의 《시칠리안느》와 에릭사티의 《짐노페디》를 아주 조용하게 들으면서.

 

 

ⓒ 주행연 (구글검색)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에서... 조각과 아이들을 만나다.

 

  내가 미술에 대해 좀 알지, 라고 말할 수준은 아니어서 어떤 전시회에 가야 할 지 막막했었다. 알고 있는 서양 작가들의 미술전은 대부분 상반기에 모두 열렸고, 이번 가을에는 주로 한국 작가들의 미술전이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 고민한 끝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컬렉션, 미술관을 말하다」에 가기로 했다. 무엇보다 한국 회화의 두 거장, 이중섭 화백과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전시된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한국 회화에 까막눈으로 살아온 터라 낯익은 이름에 반가웠던 것이 사실이다.

 

  과천 대공원역에 도착하여 제법 걸으니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언덕길에 조각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갓 잘라낸 풀내음 맡으며, 조각을 하나 하나 감상해 보았다.

  최기원님의 「위대한 탄생」은 가운데 구(球)를 중심으로 양쪽에 기둥이 대칭적으로 놓여있어 비례감과 균형성을 통해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양 기둥의 화려한 조각은 탄생의 핵심인 듯한 구(球)를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김찬식님의 「정(情)」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 중 하나였으나, 최기원님의「위대한 탄생」과 비교하면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아보았다. '탄생'이라는 단어와 '정(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따뜻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연상을 계속해 보니 '따뜻함'의 대표적인 예로 '태양'을 생각할 수 있었다. '태양'의 구조는 구(球) 형식을 띠고 있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왜 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구(球)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김윤화님의 「영겁회귀 '90」은 마치 일그러진 뫼비우스 띠처럼 시작과 끝이 맞물려 서로를 구분하기 어렵게 표현되어 있어 제목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덩어리 진 모습에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고 '영겁회귀'라는 주제의 무거움, 무한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제법 시간을 들여 조각들 사이를 걷고 있는데, 먼 곳에서 부터 '와~'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엇, 인디언 공연을 하나'하고 생각하고 있자니, 소리가 점점 커져왔다. 이윽고 나타난 것은 노란 옷을 입은 유치원생들. 아이들은 한 조각상 앞으로 달려갔다. 커다란 스테인리스 구(球)를 네 명의 청동상이 밀고 있는 「각축의 인생」이었다. 아이들 모두 선생님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사진에 나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작품은 미술관 정문 앞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장소로 보아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한 작가의 의도를 볼 수 있었다. 작가와 관람객이 작품을 통해 서로 호흡할 수 있는 좋은 사례였다.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만지고 느낄 수 있는 것. 바람직한 소통의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