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와 법학

  책이야기   2014.09.17 23:07

  우리나라 민사쟁송에 있어서 변호사들이 두려워 하는 판사의 말이 있다. 그것은 '화해하시지요.'라는 말이다. 비법학도가 언뜻 듣기에는 '뭐, 좋은 말이네.'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법리상 승소할 가능성이 높음에도 和解(민사소송법 제220조)를 권고 받으면 당사자는 억울할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억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까지 느끼는 이유는 뭘까. 그건 우리나라 민사소송법 제202조에 규정된 자유심증주의 때문이다. 즉, 법적용에 앞서 사실관계를 확정하는 데에 있어서 근거가 되는 증거채택을 법관의 재량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법관이 어떤 증거를 채택하느냐에 따라서 법리적용의 기초가 되는 사실관계가 달라지므로, 변호사는 이의를 제기할지를 두고 판사의 눈치를 보게 된다. 물론 모든 법관이 화해제도를 악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이와 같은 제도적 틈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 子曰, 聽訟이 吾猶人也이나 必也使無訟乎인저 」- 논어 제12편 안연 제13장

 

  이와같은 현실을 바라보면서 공자의 必也使無訟을 전율하며 돌아보게 된다. 소송의 구조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개입하여 결정하게 되므로 어느 정도 불균형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수 천 년이 지났지만 必也使無訟은 오늘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법적·정치적 테제인 것이다. 공자가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 미봉책으로서 송사를 없도록 하자는 의미로 말한 것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실체법을 규율함에 있어서 분쟁을 최소화 하도록 미리 입법자가 고심할 것을 강조한다. 공자는 치밀한 분석없이 흠결 있는 법률을 제정하여 법해석의 논란을  남기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를 함에 있어서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편향된 정책과 반대만을 위한 반대는 필연적으로 송사를 부르게 된다. 그렇다고 위정자로 하여금 맹목적으로 중도를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중용의 덕을 잘 실현하기 위해 고심하라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이다.

 

「子曰, 不在基位면 不謀其政이니라」- 논어 제8편 태백 제14장

 「子曰, 三年學에 不至於穀을 不易得也이니라」- 논어 제8편 태백 제12장

 

  '분쟁의 예방'이라는 개념은 제8편 태백 제14장에도 나타난다. 공자는 위정자 뿐 아니라 정사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분쟁의 예방을 위한 책무가 있음을 지적한다. 관직에 새로이 등용된 사람의 정책을 - 마치 나무에 올라간 사람을 흔드는 것처럼 - 무턱대고 비판하고, 정쟁만을 일삼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반대만을 위해서 허위사실이 유포되어 법적·정치적 문제가 발생하는 오늘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제14장은 同篇 제12장과 결합하여, 학계를 분열시키고 학생들을 갈라놓는 소위 Polifessor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공자는 건전한 참여와 혼란 조장을 구별하고 後者를 경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有子曰, 信近於義이면 言可復也이며 恭近於禮이면 遠恥辱也이며

因不失其親하면 亦可宗也이니라」- 논어 제1편 학이 제13장

 

  나아가 논어는 분쟁예방에 관해서 정치적 측면을 넘어서, 좀 더 개괄적으로 제1편에서 접근하고 있다. 제13장에서는 약속은 모두 인간으로서 마땅히 의리에 맞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상대방을 핍박해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민법 제1편 총칙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 무효규정)와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 무효규정)와 제110조(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취소규정)의 이념과 맞닿아있다. 한편 부탁함을 저버리지 않은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라틴 法諺의 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져야 한다.)와 상통한다. 이것은 논어가 철학 내지 도덕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적 원리로서 구체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분쟁의 해결수단은 法이며 이를 연구하는 것은 法學이다. 현재 우리나라 법학은 독일과 프랑스와 미국의 영향을 받은 일종의 수입품이다. 그 때문에 서양의 라틴 法諺은 아직도 유의미한 법적 원칙으로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 동야의 고전은 그와 같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그러나 앞서 본 것 처럼 동양의 고전 역시 오늘날 의미있는 테제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논어와 같은 고전을 법학적·정치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은 무척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한다.